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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가(古列加,固,高)는 고조선의 제47세 단군 세기(檀君世紀) 중에서 마지막 47世 단군(檀君)이였다. 한개(韓介)가 수유[須臾]의 군대를 이끌고 자칭 단제라 칭하는 반란이 일어나 수도가 점령되고 상장군 고열가가 난을 평정하였다. 단제께서 붕어하셨는데 후사가 없으매, 고열가가 단군 물리의 현손으로서 무리의 사랑으로 추대받기도 하였고 또 공도 있었던터라 마침내 즉위하였다.

단기 3603년(병인년) 고열가 원년, 기원전 295년, 임금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고열가가 대부여의 4대 단군으로 즉위하였으나 나라의 재정이 부족하였다. 소박하게 대단군의 즉위식을 마쳤다. 경진 원년(기원전 341) 12월 번조선왕 해인이 연나라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당하였다.

고열가 5년(경오년) 기원전 291년, 견융(犬戎)이 복종하지 않아 군사를 보내어 물리쳐 평정하였다.

재위 14년 기묘(기원전 282)년, 임금께서 단군 왕검의 사당을 백악산에 세우고 유사로 하여금 사계절에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북막의 우두머리 아리당부(阿里當夫)가 같이 연나라를 치자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진시황 8년, 기원전 252년에 단군 조선이 진에게 멸망했을 때, 단군 조선의 마지막 왕검인 고열가 단군은 구월산으로 은거했다. 구월산 삼성당은 고열가 단군이 지었다. 단제(고열가)께서는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니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마침내 왕위를 버리셨다. 그래서 오가(五加)가 연정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6년 동안 이어졌다.

임술 57년, 기원전 239년 4월 8일에 해모수(解慕漱)가 웅심산(熊心山)에 내려왔다. 원년(B.C.239), 단제께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天王郞)이라 할 만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오셨다.

고두막루의 조부 동명왕 (東明王) 고진은 단군 조선 고열가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전 임
보을
고조선의 단군
후 임
해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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