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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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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험진 (公險鎭)은 고려 예종 때의 장수 윤관(尹瓘)이 설치한 9성(九城) 중의 하나다. 1107년(예종 2)에 원수(元帥) 윤관과 부원수 오연총(吳延寵)이 군사 17만을 이끌고 여진 정벌에 나서 발해 멸망 이후 지금의 함경도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동북 여진을 몰아내고 9성(九城)을 쌓아서 경계를 정하고 비석을 공험진의 선춘령(先春嶺)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윤관이 북계에 여러 성을 쌓고 남계의 백성들을 옮겨서 이를 채웠는데, 공험진·통태진·평융진에는 각각 5,000호를 두었다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등에 의하면 공험진은 영가사오리참(英哥沙吾里站)의 북쪽, 소하강(蘇下江)가에 있다고 했으며, 지리지·지도 등에는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공험진의 위치는 정확하지 않으며, 두만강의 약간 북쪽 혹은 길주 이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공험진에서 두만강을 건너고 고라리를 넘으며 오동참과 영가참을 지나 소하강에 이르면 강가에 공험진의 옛 터가 있다. 남쪽으로 패주.탐주에 이웃하고 북쪽으로는 견주에 접해있다.

공험진은 예종 3 년에 성을 쌓고 6 년에 산성을 쌓았다. 일설에는 공주(孔州)라고도 하고 광주(匡州)라고도 하며, 선춘령 동남쪽 백두산 동북쪽에 있다고도 하고 소하강 가에 있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다산은 마천대령을 설명하면서 이곳을 선춘령과 공험진을 비롯한 9 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였다.

지금 조선국회도를 보면 두만강 윗쪽에 공험진과 선춘령이 있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공험진-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라 되어있다. 일본이 발견한 무자년 비석도 연길의 강가에서 발견했다.

두만강 북쪽에 있다. 그 근원은 백두산 아래에서 나오는데, 북쪽으로 흘러서 소하강(蘇下江)이 되어 공험진(公險鎭)·선춘령(先春嶺)을 지나 거양성(巨陽城)에 이르고, 동쪽으로 1백 20리를 흘러서 수핑강이 되어 아민(阿敏)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블라디보스톡 북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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