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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1세 또는 다리우스 대왕(기원전 549년경 – 기원전 485년)은 기원전 522년부터 기원전 485년까지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한 황제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그는 뛰어난 행정가로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제도를 개선하고 법률을 제정했으며 대규모 건축사업을 벌여 위대한 건축물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본토를 침공했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패했다.

생애 Edit

집권 Edit

다리우스 1세는 파르티아의 총독이었던 히스타스페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 그는 키루스 2세에게 반란 의혹을 받았고 이집트에서 황실의 근위대로 복부했다. 기원전 522년 키루스 2세의 아들로 황제였던 캄비세스 2세가 죽자, 다리우스는 이집트에서 메디아로 갔고 캄비세스 2세의 뒤를 이어 황제로 자처한 바르디야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제위 초기 그는 끈임없이 키루스의 정식 후계자를 자처하는 많은 반란자들의 반란에 시달려야했다. 바빌로니아에서 2번, 수시아나에서 3번에 걸친 반란이 일어났고 다른 곳에서도 키루스의 후계자들의 만란이 일어났다. 그는 단호하게 반란을 진압하면서 왕권을 강화해갔고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들 반란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군대에 봉급을 지급하는등 군대를 개혁했고 효과적으로 군대를 지휘할수 있었다.

수시아나에서 일어난 세번째 반란을 진압하고 그는 비로소 키로스의 진정한 후계자로 권력을 장악했다.

제국의 강화 Edit

국내의 정권이 안정되자 그는 외부로 눈을 돌려 제국의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기원전 519년 카스피 해 동쪽의 스키타이족을 공격하고 몇 년 뒤에는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기원전 512년에는 대군을 이끌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동부 트라키아마케도니아 왕국을 굴복시킨 뒤 도나우 강을 건너갔다. 이 원정은 이들 유목민들의 변경 침입에 대해 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돈강 유역의 흑해까지 진출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실패했다. 소아시아에서는 에게 해에 있는 렘노스와 임브로스섬을 손에 넣고 그리스 본토 바로 앞까지 진출하여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경제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

기원전 499년 다리우스 1세의 지배에 대항해 아테네에레트리아의 지원을 받은 이오니아인이 반란을 일으키자 다리우스는 이들 반란을 진압하고 이에대한 보복으로 그리스 원정을 준비한다.

파일:Crystal Clear app 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입니다.

기원전 492년 다리우스1세는 사위인 장군 마르도니우스에게 그리스 원정을 맡겼으나 그의 함대가 아토스 산 근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파괴되어 실패했다. 기원전 490년에는 다티스의 페르시아 군대가 에레트리아를 점령하고 아테네로 침공해 들어가는 중에 마라톤에서 아테네 군에게 패배하여 퇴각했다. 다리우스는 다시 3번째로 그리스 원정 준비를 했으나 때마침 기원전 486년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10월에 죽었다.

업적 Edit

건축사업 Edit

다리우스 1세는 정력적으로 대규모 건축사업을 추진했는데 그의 페르시아 건축양식은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기원전 521년 수사를 새로운 행정도시로 삼아 요새와 궁전을 재건했다. 이전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이던 파사르가다에가 예전의 왕들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절하고 그가 그의 고향에 페르세폴리스를 새로이 세우고 수도로 만들었다. 이 도시의 성벽은 거의 18m에 달하고 두께는 9m 정도 되는 대규모의 공사였다. 비록 그의 생전에 대규모의 궁전과 보물창고등이 건설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뒤를 이어 완공했다.

그는 이집트 나일강과 수에즈를 연결하는 운하도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의 배들은 나일강에서 홍해를 거쳐 페르시아까지 다녔다고 한다. 또한 그는 영토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도로망을 건설하였고 수사에서 페르세폴리스, 사르디나에 이르는 넓은 도로를 만들었는데 훌륭한 휴게시설과 경비부대, 역참이 갖추어져 있었다.

행정조직 Edit

그는 키루스가 시작한 사트라프(총독)제도를 완성하여 전 제국을 20개의 속주로 나누고 각 속주의 세금을 확정해 공평히 부과했다. 다리우스는 공평한 한 정책으로 제국의 수많은 민족을 지배하는데 성공했는데 각 민족의 고유한 종교, 관습, 문화를 존중해 주었다. 각 지역의 총독(사트라프)들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피지배 민족들에게 맞는 법률을 정해 법전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또한 독립적인 재정과 어느 정도 군사적 자율권도 보장해 주었는데 이렇게각 지방간의 권력을 분산함으로 인해 반란의 가능성을 낮추었다. 기원전 519년에는 바빌로니아의 포로 잡혀온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또한 상업을 장려하고 화폐, 도량형을 통일했다. 그의 치세동안에 페르시아는 인구가 늘었고 각종 상업과 산물이 융성했다. 그는 비록 자신은 일신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고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한 신이라고 선포했으나 다른 민족들의 종교에는 관용을 베풀었는데 이것은 제국의 다른 피지배민족들의 대부분이 다신교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에는 노예가 없다고 하며 건축물을 건설 할때 인부나 노동자에게 일정한 임금을 주고 일을 시켰는데 이것은 당시 고대의 관습에서는 획기적인 일로 여겨진다.

전 임
캄비세스 2세
제3대 페르시아 왕
기원전 522년 - 기원전 485년
후 임
크세르크세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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