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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왕(帶素王. 기원전 60년?~서기 22년)은 동부여의 제3대 군주이며, 금와왕의 큰아들이다.

대소와 동명왕 Edit

대소는 금와의 큰아들로, 6명의 형제가 있었다고 한다. 금와의 동생들과 주몽이 모두 장성하여, 금와의 후계자로 성장하고 있었는데, 주몽이 항상 금와의 친아들보다 뛰어나 대소의 시기를 사게 되었다. 대소가 주몽을 미워하여 금와에게 주몽을 제거할 것을 간언하나, 거부당한다.

이에 대소는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주몽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주몽을 추격하던 중, 엄호수에 이르러 물고기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주몽을 강 건너로 보내주는 바람에, 대소는 주몽을 더이상 추격할 수 없었다. 이후 주몽졸본부여로 건너가 고구려를 창건한다.(기원전 37년)

대소와 유리왕 Edit

유리왕이 어머니 예씨와 함께 동부여를 탈출한 기원전 19년을 전후로 대소는 동부여의 권력자가 되었다.(왕위에 등극하였는지는 불명확) 이후 유리명왕이 고구려의 왕위에 오르자, 대소는 고구려에 대한 본격적인 전쟁을 개시한다.

유리명왕 14년인 기원전 6년, 대소는 유리명왕과 화친을 제의하고 인질교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리명왕이 이를 거부하였고, 그해 11월 5만 군사로 고구려를 침략한다. 그러나 폭설 때문에 후퇴한다.

이후 대소는 직접적인 전쟁보다 고구려 내부의 대(對)부여 강경파온건파의 다툼을 지켜보는 쪽으로 정책을 바꾼다. 유리명왕 역시 건국 초기에 지나친 전쟁은 원하지 않았으며, 대부여 강경파였던 탁리사비를 죽임으로써, 의지를 보인다.

이후 왕자 도절해명이 잇달아 죽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민심이 흔들리는 현상이 도래한다. 10년경, 대소는 다시 고구려를 공격할 준비를 하나, 유리명왕이 동부여에 화친을 청하면서,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대소와 대무신왕 Edit

유리명왕의 다음 대인 대무신왕 대에도 대소는 동부여 군주의 자리를 굳게 지킨다. 대무신왕이 왕위에 오른지 3년째가 되는 20년, 대소는 고구려 측에 몸통은 두 개인데 머리는 하나뿐인 붉은 까마귀를 보내며 서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까마귀는 검은 법인데, 이제 빛이 변하여 붉게 되었고, 또한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이니, 이는 두 나라가 병합될 징조이다."

이에 대무신왕은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검은색은 북방의 색인데, 이제 변하여 남방의 색이 되었다. 또한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것이다. 그런데 그대가 이것을 얻었으나 가지지 못하고 내게 보냈으니 양국의 존망은 알 길이 없구나."

이러한 답변을 들은 대소는 크게 노하였고 고구려에 대한 전쟁준비를 서두른다. 대무신왕은 이에 선제공격으로 맞섰다. 21년 12월, 대무신왕은 괴유를 앞세워 부여를 침공했고, 22년 2월의 전투에서 대소는 패하여 참수당한다.

대소가 죽은 후 대소의 동생인 갈사왕갈사국를 세웠으며, 22년 7월에 대소의 사촌동생이 백성 만여 명을 이끌고 고구려에 귀순하는 등, 동부여는 큰 혼란에 빠진다.

대소의 생몰년 Edit

대소는 주몽의 탄생년인 기원전 58년 이전에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무신왕과의 전쟁에서 죽었을 때는 서기 22년 2월로, 80대의 나이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Edit

  • 김부식, 《삼국사기》
  •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 웅진지식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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