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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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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보유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베트남의 국기 베트남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Độc lập - Tự do - Hạnh phúc
독립, 자유, 행복
국가: 진군가
베트남의 위치
수도 하노이
21°02′00″N 105°51′00″E / 21.033333°N 105.8500°E / 21.033333; 105.8500
최대 도시  호찌민 시
10°46′10″N 106°40′55″E / 10.769444°N 106.681944°E / 10.769444; 106.681944
[[파일:틀:위치 지도 베트남|120px|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고 호찌민 시는 베트남의 최대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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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 베트남어
정부 형태 사회주의 공화국
농득마잉
응우옌민찌엣
응우옌티도안
응우옌떤중
독립
 • 독립선언
 • 승인
 • 통일
프랑스로부터 독립
1945년 9월 2일
1954년
1975년 4월1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331,689㎢ (65위)
1.3%
인구
 • 2006년 어림
 • 1999년 조사
 • 인구 밀도
 
84,402,966명 (13위)
76,324,753명
253명/㎢ (31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2,518억 (36위)
$3,000 (123위)
HDI
 • 2006년 조사

0.718 (114위)
통화 (ISO 4217:VND)
시간대
 • 여름 시간
(UTC+7)
없음 
ISO 3166-1  704
ISO 3166-1 alpha-2  VN
ISO 3166-1 alpha-3  VNM
인터넷 도메인 .vn
국제 전화 +84
11975년 4월 까지는 남베트남북베트남으로 갈라져 있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베트남어: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꽁호아 싸호이쭈응이아 비엣남[*], 한뜨: 共和社會主義越南, 문화어: 윁남 사회주의공화국, 통용: 월남(越南))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사회주의국가이다.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에 면해 있다. 동남아시아 본토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수도하노이이며, 최대 도시는 호찌민 시이다.

이 나라의 명칭은 베트남어로 "Việt Nam(越南)"인데 이것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하였던 옛 베트남 왕조인 "Nam Việt(南越)"의 명칭을 거꾸로 쓴 것이다. 또한 같은 혈족인 중국계의 위에족도 고대에 중국 남부에 가까이 살던 민족의 이름이다.

역사 편집

파일:Crystal Clear app 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베트남의 역사입니다.

베트남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여 왔으며 청동기 문명인 동손 문명(東山文明)부터 베트남의 역사가 시작된다. 기원전 257년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홍방 왕조가 세워졌으나 이어 중국 세력이 밀려 들어와 기원전 111년에는 한나라에게 복속되었다. 이로부터 10세기까지 간헐적인 독립운동을 제외하고는 중국 세력의 통치가 지속되었다.

응오꿴이 베트남의 독립을 쟁취한 10세기 이후, 베트남 왕조의 통치가 이어져 15세기의 레 왕조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프랑스의 세력에 힘입어 응우엔 왕조가 건국되었으나 이내 프랑스의 식민정책에 의하여 19세기 중반에 베트남의 독립은 종료된다. 프랑스는 제 2차 세계대전 때까지 베트남을 식민지로서 통치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종전 후에 다시 군대를 파견하였고 이는 호찌민이 지도하는 민족 세력인 비엣민(월맹)과 남북으로 대립하게 된다. 베트남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분단되었고 1964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은 미국베트남 전쟁을 치려야만 했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등과도 전쟁을 치렀으며, 1980년대 이후 개방 정책을 펼쳐 서방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행정 구역 편집

파일:Crystal Clear app 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베트남의 행정 구역입니다.
파일:VietnameseProvincesMap.png

베트남의 행정 구역은 59개 성(베트남어: tỉnh [*], 省)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인 하노이를 포함하여 껀터, 다낭, 하이퐁, 호치민은 성과 같은 급의 직할시이다.

자연 편집

지리편집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동단에 위치, 남중국해에 연해 있는 남북으로 약 1,600㎞에 걸쳐 길게 내리뻗은 땅이다. 최대 너비는 약 650㎞로 라오스와 맞닿은 북부 국경에서 통킹만에 이르는 거리이다. 국토는 크게 북부 고원지대, 송코이강(Songkoi 江)의 통킹 삼각주, 안남산맥, 해안저지대, 메콩강 삼각주의 다섯지역으로 이루어진다.

  • 북부 고원지대-북서부에 있는 산악지대로 중국과 라오스 영토 안까지 뻗어 있다. 이 지역의 산들은 대부분 숲이나 밀림으로 덮여 있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 판사판산(3,143m)도 이 지역에 있다.
  • 송코이강 삼각주-북부 고원지대에서 통킹만까지 뻗어 있으며 거의 전역이 해발 3m 이하의 저지대이다. 통킹 삼각주는 베트남 북부에서 주요한 농경지대로 예부터 베트남 민족의 활동 무대다.
  • 안남산맥-북부 고원지대에서 서부지역을 가로질러 호치민시에서 북쪽으로 약 80㎞ 떨어진 지점까지 뻗어 있다. 중부는 대부분이 안남산맥으로 이루어지며, 평야는 해안에 접해서 대상(帶狀)으로 좁게 달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산맥이 해안으로 바싹 다가서 있으므로 좋은 항만이 없다. 이 산맥의 고지에는 타이족 이외에 먀오족·모이족·몬타냐족 등 많은 부족이 살고 있다.
  • 해안저지대- 베트남의 중동부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산지에서 남중국해 쪽으로 비스듬히 비탈져 있고, 송코이강 삼각주에서 메콩강 삼각주까지 펼쳐져 있다. 해안저지대 거의 전역에서 쌀을 생산한다. 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 메콩강삼각주- 베트남의 남부지역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메콩강 삼각주는 해발 3m이하의 저지대이다. 베트남 주민의 절반이상이 이곳에 살고 있는 주요 농업지대이다. 베트남 민족은 17세기에 들어와서 선주민 크메르족을 쫓고 이 미래의 곡창지대를 지배하게 되었다.[1]

기후편집

열대계절풍으로 5월부터 10월까지는 남서몬순이 불어 많은 비를 몰고 오며, 11월부터 4월까지는 동북몬순으로 건조기가 된다. 북부 일부 지역은 사계절이 나타나지만 남부지방은 일년내내 습도가 높으며 여름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중부지방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과 가장 습한 지역이 자리잡고 있다. 산악지방은 삼각주나 해안저지대보다 대체로 기온이 낮고 비가 더 많이 온다.[1]

정치 편집

파일:Crystal Clear app xmag.svg 베트남 역대 지도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구(舊) 월맹은 1969년 호치민이 사망한 뒤 뒤트루옹 친 국민의회상임위 의장, 레 두안 당 제1서기, 팜반 동 수상 등 3인을 중심으로 집단지도 체제를 채택했다. 구 월맹은 월남이 적화된 후 월남 임시혁명정부와 함께 1여 년간의 남북통일 준비작업을 끝내고 1976년 4월 25일 30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최고 권력기구인 492석의 남북단일 국민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로 인구 10만 명당 1석을 기준으로 하는 배분원칙에 따라 북베트남에서 249석, 남베트남에서 243석을 선출했다. 남북 베트남의 18세 이상의 유권자들이 참가한 총선은 남북 베트남의 공산정권이 전국의 노동자·농민·여성·산악부족 및 그 밖의 소수인종에서 선정한 후보자 중에서 국민의회 대표들을 선출했으며 야당후보는 없었다.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남북 베트남 단일 국민의회는 1976년 7월 역사적인 통일 베트남 수립을 선포하고 국호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으로 하였다. 수도는 하노이로 정하는 한편 초대 대통령으로 구 월맹의 마지막 대통령 톤둑 탕을, 그리고 2명의 부통령으로는 구엔 루옹 반 및 구엔후 토를 선출하였다.또한 구(舊) 월남 수도 사이공을 호치민 시로 개칭하고 국기는 종래의 월맹기였던 황성적기(黃星赤旗)를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국민의회는 통일 베트남의 새 헌법을 마련할 36명의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하는 동시 새 헌법이 공포될 때까지 1959년도 월맹헌법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입법기관으로 국민의회가 있고 각 성(省)에 각급 인민회의가 있다. 단원제이며 임기는 5년, 매년 2회 소집된다. 정의장, 부의장과 간부의원 15명으로 구성되는 상임위원회가 실질적인 입법기능을 행사한다.

1991년 6월 제7차 당대회에서 도이모이 추진에 중심역할을 해온 도무오이가 서기장으로 선출됐으며, 동 8월의 내각개편에서 개혁파인 보반 키에트가 총리로 선출됐다. 1996년 6월의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도 ‘도이모이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재확인 했다. 2001년 4월 농 득 만 서기장이 취임했다.[1]

주민 편집

파일:Crystal Clear app 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베트남의 민족목록입니다.

베트남의 인구는 약 8,162만(2003년)으로, 그 90%가 베트남인이다. 그 밖에 타이인·중국인·크메르인 등이 있으며 산악지대에는 미오·랭이·몬타냐 등 많은 부족이 살고 있다.[1] 베트남은 다민족 국가로서 베트남 정부가 공인하는 민족의 수가 54개에 이른다. 최대 민족은 킨족(京族;또는 비엣족(越族))으로 보통 베트남인이라고 할 때 다수종족인 이 킨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킨족은 베트남 전체의 86.2%를 차지한다. 킨 족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정체(政體)를 거친 북부인과 남부인은 여러가지 면에서 대조적인 신체적 특징과 정치,경제적 대립의식을 갖고 있다. 각각의 소수민족은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참족과 같이 역사상 독립국가였다가 베트남에 흡수된 민족도 있고,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채 산간지역에서 생활을 하는 민족도 있다.

언어 편집

파일:Children in Middle Vietnam.jpg

공용어베트남어이며 로마자로 적힌다. 언어는 단철어(單綴語)로 성조(聲調)에 6성이 있다.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가 사용되고 있었으나, 19세기부터의 프랑스 식민통치 밑에서 베트남어의 로마나이제이션(Romanization)이 추진되어 현재 한자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1] 꾸옥 응으(quốc ngữ, 國語)로 불리는 이 로마자화는 16세기부터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의 현지어를 표기하려는 작업에 기반해 있었다. 예수회알렉산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는 포르투갈어 철자법을 바탕으로 최초의 안남어 사전을 만들어냈다.

베트남어는 민난어처럼 극동의 언어들 중에서 중국어와 유사한 문자 체계에서 로마자로 변경한 흔치 않은 언어중 하나이다. 이 로마자화의 사용은 현지인들의 교육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1945년 이후 베트남이 독립한 뒤 공식 표기법이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15세기 말에 한자와 비슷한 문자인 쯔놈이 발생하였지만, 그 사용은 한문에 익숙한 일부 지식인층에 국한되었고, 널리 보급되지 않았으며 20세기 이후에는 사용이 끊어졌다. 이는 프랑스의 식민 정책과 관련이 있다. 프랑스 식민통치자들은 베트남 지배시 베트남의 전통적인 유교 사상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베트남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꾸옥 응으를 사용하도록 하였다.[2] 그러나, 처음에 프랑스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으로 로마자에 거부감을 표시하던 베트남의 독립운동가들은 베트남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근대사상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한문이나 쯔놈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로마자의 편의성을 인정하고, 이후 로마자를 베트남어의 새 문자로 적극 받아들여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한자문화를 완전히 대체하였다.

베트남은 55종에 달하는 언어의 다양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다시 6, 7개 정도의 언어 집단으로 나뉜다.

외국어로는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가 쓰이는데, 베트남은 인도차이나에서는 유일하게 프랑스어보다는 영어가 많이 쓰인다. 왜냐하면 프랑스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미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경제 편집

1975년에 공산화 통일된 베트남은 오랜 전쟁 탓에 경제 기반이 무너져 베트남 국민들의 가난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1980년에는 태풍으로 역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가 발생해 베트남 경제가 타격을 받았다. 이후 1980년대부터 베트남 정부는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해결해주기 위하여 계획경제 작업을 중지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을 실시하였다. 현재는 옛날의 가난에서 크게 벗어났으며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고 있지만 빠른 경제 성장의 후유증도 같이 겪고 있다.

베트남의 GDP는 446억달러이며 1인당 GDP는 700달러이다[3]. 수출은 322억 달러, 수입은 368억 달러이며 휴대폰 가입자는 인구의 9% 정도인 730만 명인데 SK 텔레콤 등 한국 업체들이 CDMA 방식을 수출하여 진출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는 991만 명(12%)이고 이중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20만 명으로 아직 소수이다. 컴퓨터 보급율 또한 155만대(2%) 정도이다. 하지만 주요도시에는 인터넷 카페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서 인터넷 국제전화 등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베트남의 생산품은 1차 산업으로 통해 얻어진 생산물이다. 특히 베트남은 중국미국을 이어 3대 생산국이다. 그 외에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과 서방 세계와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석유개발을 통해 산유국이 되었다.

산업 편집

농업이 주산업으로 되어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메콩 삼각주에서 생산되는 쌀이 국민의 주식인 동시에 수출품목의 대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하고 사회주의 이식 실패에 따른 경제파탄이 왔다. 1986년 12월 당대회에서 부분적인 사유경제제도를 도입하는 실용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했다. 제4차 5개년 계획(1986년~1990년)의 골간으로 1990년까지 2,300만 톤의 식량 생산, 5년간 70%의 수출증대를 선정하는 등 경제의 개방화를 적극 추진했다. 북부 베트남의 주요 수출품은 석탄·목재·해산물·차 등이고, 석탄·철광석·인회석·크롬·주석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남부 베트남의 주요 수출품은 쌀·고무·새우·차 등이다. ‘도이모이 정책’ 이후 베트남 경제는 1989년 이래 연평균 8%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으며 1995, 1996년도에도 9% 이상의 고속성장을 지속했다.[1]

유통업 편집

베트남 유통업태는 특히 도시지역에서 과거 몇 년 동안 전통적인 재래시장으로부터 현대화된 수퍼마켓과 쇼핑센터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수입상품의 취급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1999년 2개의 대형수퍼마켓에서 2004년에는 전국적으로 85개가 넘는 현대화된 수퍼마켓이 운영이다.

교통 편집

파일:Crystal Clear app 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베트남의 교통입니다.
파일:Hai Van Pass Vietnam.jpg

베트남의 근대적 교통 체계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수확한 농산물울 운송할 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베트남 전쟁의 결과 파괴된 교통 체계를 재건하고 근대화하였다. 가장 일반적인 교통 수단은 도로 운송이며, 도시 간 이동에 일반 시외버스와 오픈 투어 버스(Open tour bus)를 이용할 수 있다. 2,654km의 단선 철도는 중국과 연결이 되며 하노이호찌민 시 간을 연결하는 철로가 중요하다. 떤썬녓 국제공항 등 국제공항이 3개 있고, 베트남 항공 등 2개의 베트남 국적 항공사가 있다. 사이공 항 등이 중요 항구이며 해로는 1만7천킬로미터에 달한다.

철도가 호치민과 하노이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으며 남부에서는 판랑(Phan Rang)·나트랑(Nha Trang)·다낭(Da Nang)·위에(Hu)·쾅트리(Quang Tri) 등지로(연장 1,300㎞, 1970년), 북부에서는 하이퐁(Haiphong)·타니호아(Thanh Hoa)·동호이(Dong Hoi) 등으로 연결된다. 도로망도 남부의 주요 도시로 공로가 이어져 있고 북부의 하노이·하이퐁·남딘(Nam Dinh)을 잇는 외에 건설중인 것도 있으나 철도와 함께 육상 교통은 전쟁의 피해로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1]

군대 편집

이 나라는 징병제를 실시한다.

문화 편집

파일:Aodai-nonla-crop.jpg

베트남의 공식 언어는 베트남어이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웃한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자문화권에 속하여, 인도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중국 남부 지방과의 오랜 교류로 인하여, 베트남 문화를 특징짓는 한 가지 요소는 재정적 책임이다. 베트남에서 교육과 자수성가는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과거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이 베트남 사람이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유일한 것이었다. 베트남이 오늘날의 영역으로 통합된 것은 근대의 일로, 그 전에는 유교 및 한문화의 영향을 받은 북부와 베트남의 주 종족인 킨 족외에 인종적으로 말레이계에 속하는 참파인의 국가였던 참파가 있었던 중부문화권, 그리고 크메르 제국의 영역에 속했던 남부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 북부,중부,남부의 차이는 언어및 풍속, 문화등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한다. 중국의 유교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베트남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상하 개념은 없고, 서로 스스럼없이 대한다. [4]

사회주의 시대에 베트남의 문화적 삶은 정부가 통제하는 미디어와 사회주의적 프로그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십년동안 외국 문화의 영향은 차단되고 소련, 중화인민공화국, 쿠바 등 공산주의 국가의 문화를 음미하고 공유하는 것이 강조되었었다. 1990년대 이래로,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유럽, 미국의 문화와 미디어에 대폭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베트남에는 1945년 9월 2일에 하노이에서 설립된 국영방송국인 베트남의 소리가 있다.

베트남인의 이름은 성, 미들 네임, 그리고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성씨 제도는 중국에서 도입된 것이다. 한자가 폐지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는 베트남인은 극소수이지만, 이름 뒤에는 한자의 의미가 숨어 있다.

18세기의 작가 응우엔 주에 의해 저술된 대서사시 쭈엔 끼에우는 베트남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6.8조의 연서체로 분량은 총 3,254행에 달한다. 특히 이 작품은 쯔놈으로 쓰여진 자료중의 최대의 것으로 베트남의 국민문학으로 불린다.

베트남의 민속 의상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아오 자이이다. 아오 자이는 현재에는 명절이나 결혼 등 행사, 일상의상 등으로 입는다. 흰색 아오 자이는 베트남 전역에서 여학생의 교복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성별 구분없이 아오 자이를 입었으나 현재에는 여성용 의복으로 한정된다. 단, 전통 문화 행사에서는 남성이 입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의 요리는 매우 적은 기름과 많은 야채를 쓰기 때문에 맛이 풍부하고 건강에도 좋다. 주 요리의 재료는 대개 간장, 생선 소스 등이다. 맛은 대체로 달거나 맵거나 시거나 감칠맛이 나거나 수 많은 민트향와 바질향이 난다.

베트남의 음악은 세 지역, 북부(베트남어: Bắc), 중부(베트남어: Trung), 남부(베트남어: Nam) 지방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북부 지방의 전통 음악은 베트남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음악이고, 보다 전통적이며 엄격한 형식을 가진다. 베트남의 전통 음악은 몽골의 침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의 경극 극단을 붙잡아 두었다. 중부 지방의 전통 음악은 우울한 멜로디 등 참파 문화의 영향을 보여 준다. 남부 지역의 음악에서는 자유방임적인 삶의 태도가 묻어난다. 베트남의 전통 현악기인 단 짜인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현(弦)은 철제이고, 각각의 V자 모양으로 된 다리에 의해 지지되어 있다.

종교 편집

파일:Cao Dai My Tho.JPG

베트남의 종교로는 불교, 유교, 로마 가톨릭, 개신교 등이며, 제일 많이 믿는 종교는 불교, 로마 가톨릭(평균 신자 비율 6%), 개신교 순이다. 그외에 신흥종교도 있는데, 양대 신흥종교는 까오다이교호아하오교이다. 까오다이교는 1926년 베트남 남부의 터이닌에서 응오반쩨우에 의해 창시된 불교, 로마 가톨릭, 개신교와 토속종교가 혼합된 유일신교이고, 호아하오교는 베트남 남부에서 기원한 불교에 바탕을 둔 신흥종교이다. 1939년 후인 푸 소가 창시하였다. 발원지인 메콩 강 삼각주 지역을 중심으로 대략 200만명의 신자가 있다고 추산된다. 베트남은 과거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었지만 예로부터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믿는 종교가 중국, 인도의 영향을 받은 불교였기 때문에 불교유교만은 탄압하지 못했다. 현재는 제한적인 종교활동은 허용되고 있는데 집회는 사전 신고를 하여야 하고 선교는 불법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종교정책이 탄압정책에서 종교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실용정책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편집

베트남의 로마 가톨릭교회는 베트남 정부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허용받았으며, 2005년 12월 5일에는 바리아 교구가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크레센지오 세페 추기경에 의해 26번째 교구로 인정받는등 교세가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2년에 한 번만 신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신학생 선발제한으로 로마 가톨릭사제가 부족한 문제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5] 베트남 개신교는 크게 복음주의 노선과 오순절 교회 노선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전도활동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설교내용을 종교문제를 맡는 당국에 알려야 하는 등, 로마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 베트남 성공회동남아시아 성공회 관구교회(Church of the Province of South East Asia)싱가포르 교구(Diocese of Singapore)에 베트남 부교구(Deanery of Vietnam)로 속해 있다.[6]

대외 관계 편집

1992년 중국과 남사군도 영유권을 놓고 분쟁이 있었다. 미국과는 1975년 이후 계속되어 왔던 대 베트남 금수조치가 1994년 2월 해제되고, 1995년 1월 양국간에 상호연락사무소가 개설된 데 이어 동 7월 11일에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또 1995년 1월 독일과 정치·경제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동 4월에는 오스트리아와 4개 경제협정을 체결했다. 대한민국과는 1992년 수교했다. 한편 유엔 등 국제기구들에 대한 외교도 활발히하여 1976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IBRD)에 가입했으며 1995년 7월에는 아세안(ASEAN)의 7번째 회원국이 되었다.[1]

한월 관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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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에 베트남의 왕족이 고려에 귀화한 바 있다. 이후, 대한민국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여전히 고엽제 피행 등 후유증을 안고 있다. 1992년 외교 관계가 재개된 이후 대한민국의 여러 대통령들이 베트남을 방문하였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과를 표명하였다. 베트남과 대한민국 간에 경제적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초의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는 13세기초 고려 고종때라고 전해진다. 베트남에 트란왕조가 들어서자 멸망한 리왕조의 왕자 이용상이 고려로 피난와 귀화하여 화산 이씨로 개명하고 살았다고 한다.

대한민국(남한)은 미국의 요청에 의해 1964년 부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파병하였다. 의무중대 파견을 시작으로 1965년 부터는 맹호,청룡부대 그리고 1966년에는 백마부대의 파견으로 연인원 30만 명, 최대 5만 명이 파병되었다. 이중 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참전 군인 중 이후 2만여 명이 고엽제 등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용사가 많다. 이 파병기간 도중 미군의 밀라이 학살사건과 비슷한 파월 한국(남한)군에 의한 빈호아사 커우 마을 학살사건(1966년 12월 6일, 131명 사망) 등의 민간인 학살들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 이전에는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이 각각 남한북한과 단독 수교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 통일이 된 이후로는 북한과의 수교만 유지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남한)과의 공식 수교 재개는 1992년 12월 22일에 이루어졌다. 현재 상주 대사관이 설치 되어있으며 호치민시에는 총영사관이 설치되어있다. 1993년 포 반 키엣 수상이 방한하였으며, 1996년에는 김영삼 대통령, 1998년 김대중 대통령,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베트남 정부가 사회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과감하게 자본주의 기반 정책으로 고쳐나가면서 많은 발전을 하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해낸 대한민국(남한)을 그 모델로 삼고 있다. 때문에 현재의 한국(남한)과 베트남의 관계는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불리고 있으며 특히 유전개발과 CDMA 이동통신 분야에서의 교류협력등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 편집

베트남은 소련과 관계가 깊었던 나라였으나,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국중국에 가까워지는 양상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와 베트남은 에너지, 광물자원 공동개발협정에 서명하면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복원했다. [7]

주석편집

  1. 1.0 1.1 1.2 1.3 1.4 1.5 1.6 1.7 글로벌 세계 대백과, 베트남
  2. 《상식밖의 세계사》/안효상 지음/새길
  3. ( 2006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자료)
  4. 하재홍. “베트남엔 선후배가 없다?”, 《한겨레21》, 2006년 9월 15일 작성. 2008년 7월 18일 확인.
  5. 경향잡지2006년 2월호,아시아 교회는 지금-베트남 교회,박준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p.80-81
  6. 동남아시아 성공회 싱가포르 교구 홈페이지
  7. 러시아-베트남, 전략적 동반자관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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