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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argon II and dignitary.jpg

사르곤 2세(아카드어 사루키누, 정통 국왕, 제위 기원전 722~705) 는 아시리아 왕이였다. 기원전 722년 사르곤 2세는 살만 에세르 5세와 공동 집정하였다. 기원전 709년 샬만에세르 5세의 사후 왕국의 단독 지배자가 되었다. 그는 티글라트 필라세르 3세의 아들이였는지 왕족과 무관한 찬탈자였는지는 불분명하다. 그의 비문에는 그는 스스로를 새 인물로 꾸미며 그의 전임자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샤루키누(진왕)이라는 이름을 아카드의 사르곤을 따라 사용하였다. 그는 약 16세기이전에 최초의 셈계 제국을 창시하였다. 사르곤은 그 이름의 성경 형식이다. 그의 지배의 시작시의 어려움으로 괴롭게 되어 사르곤 2세는 칼데아 인 마르둑-아플라-이딘과 계약을 하였다. 그는 세금으로부터 아수르와 하단의 도시의 거주자 뿐만아니라 모든 도시의 사원을 해방하였다. 사르곤 2세는 그리하여 아시리아의 지지를 얻은 반면 마르둑-아플라-이딘은 새 엘람왕 움마니가쉬의 도움으로 바빌론을 정복하였고 기원전 721년 왕이 되었다.

기원전 720년 사르곤은 엘람에 대항하여 움직였지만 아시리아 주력은 데르 근처에서 패하였다. 그해 중에 사르곤은 시리아 연합을 카르카르에서 격파하고 근처의 아르파드, 시미라 그리고 다마스커스의 주권을 획득하였다. 사르곤은 필니스티아의 가자를 정복하였고 라파를 파괴하였으며 이집트 군대에 대해 승리를 쟁취하였다. 그가 귀환할 때 그는 사마리아를 새로운 주 사메리나의 주도로 재건시켰고 아랍인과 시리아 인들을 그것에 정착시켰다.

기원전 717년 그는 유프라테스 상류의 자그로스 산맥 지역들과 히타이트 도시 카르케미쉬를 정복하였다. 기원전 716년 그는 만나이 왕국에 대항하여 움직였는데, 그곳의 지배자 아자는 이란주의 아들로 우라르투인의 도움으로 울루수누에 의해 폐위되었다. 사르곤은 수도 이르투를 장악하였고 파르수아쉬(우르미아호의 페르시아인 원래 고향)과 카르네르갈(키쉐심)에 군대를 진주시켰다. 그는 메디아에도 새 기지를 건설하였는데 그중 중심은 하르하르로 그가 카르샤루킨으로 개명하였다.

기원전 715년 다른 이들이 따랐다. 카르나부, 카르신과 카르이쉬타르는 모두 바빌론신의 이름을 얻은 이들이다. 그리고 아시리아 백성들이 다시 정착하였다.

기원전 714년 우라르투로의 사르곤의 8번째 원정은 아수르 신과 두르샤루킨의 왕궁에 사르곤이 보낸 편지로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713년 사르곤은 고향에 머물렀다. 그의 군대는 여러곳 중에 카랄라, 타발 그리고 킬리키아를 접수하였다. 약간의 메데스 지배자는 조공을 제안하였다.

기원전 711년 구르굼이 정복되었다. 유대, 모압 그리고 이집트에 의해 지지된 아쉬도드의 도시 필리스틴의 부상은 억압되었고 아쉬도드는 아시리아의 속주가 되었다.

기원전 710년 사르곤은 그의 지배에 충분한 안전을 느껴, 바빌로니아로 진군하였다. 한 군대는 엘람과 엘람의 새로운 왕 슈트룩 나훈테 2세(슈투르-나훈니)에 대항하여 움직였다. 마머지는 사르곤 그 자신의 지휘아래 바빌론으로 진군하였다. 사르곤은 바빌론을 장악하였고 마르둑-아프라-이딘은 도망쳤다. 그는 결국 샤트알아랍의 습지에서 체포되었다.(그러나 그는 후에 센나케립의 측근 가시로 증명된 것으로 보인다.) 유목 아라마이안 종족이 정착하였던 남바빌로니아는 정복되었고 감불루 속주로 인계되었다. 마르둑아플라이딘의 체포 후에 바빌론은 사르곤에 항복하였고 그는 기원전 710년에 바빌론 왕으로 포고되었다. 그리하여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두 왕조를 복원하였다. 그는 3년간 바빌로니아에 남았다. 기원전 710년 이아(키프러스)의 7왕이 아시리아의 주권을 받아들였다.

기원전 709년 그는 바빌론 왕으로 신년 행렬을 이끌었다. 그는 왕자 센나케립을 아라마이크 귀족여인 나키아와 결혼시키고 남쪽에 머물며 유프라테스 하류의 아라마이크와 칼데아 종족 뿐만아니라 수티 유목민을 진정시켰다. 엘람광의 경계의 약간의 영역도 역시 점령하였다. 기원전 709년 프리기아왕 마이다스가 유목 킴메리아족에 의해 공격받고 아시리아에 항복하였다.

기원전 708년 쿰무후(코마게네)는 우라르투가 이미 킴메리아에 거의 굴복하였고 엘람은 약화되었으며 마르둑아플라이딘은 당분간 무력하였고 이집트인의 시리아내 영향력은 역시 일시적으로 쇠퇴하였다.

사르곤의 전통적인 수도 아슈르 보다 니네베를 선호하였다. 기원전 713년 그는 케벨 무르시의 기슭에 자리한 니네베에서 20km 북쪽에 새로운 왕궁과 두르샤루킨이라 불리는 도시의 건설을 명하였다. 토지가 매수되고 건설노동자의 빚이 탕감되었는데 충분한 노동력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관원들의 지휘하에 도시는 부분적으로 전쟁포로들과 추방자들이 정착하였는데 아시리아 관원들은 그들이 신과 왕을 충분히 존경하는지를 확인하여야 하였다. 건설이 미완이였지만 왕정은 기원전 706년 두르 샤루킨으로 옮겨갔다.

기원전 705년 사르곤은 킴메리아 원정중 쓰러졌다. 킴메리아인들은 우라르투프리기아 왕국을 파괴하고 더 서쪽으로 옮겼다. 사르곤은 그의 아들 센나케립(제위 기원전 705~681)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치세에 아시리아 인들은 이스라엘 왕국을 격파를 완료하여 3년의 장악과 주민의 추방후 사마리아를 복속시켰다. 이것은 잃어버린 10부족의 전설의 근원이 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그의 전임자 살만에세르 5세의 지휘하에 다른 사람들이 사마리아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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