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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므네몬(Mnemon, 기원전 436년~기원전 355년)은 기원전 404년에서 그의 사망시까지 페르시아의 왕이였다. 그는 동생 키루스에게서 그의 지위를 방어하였다. 키루스는 401년 총독(샤트랩)(366~358)의 반란으로 쿠낙사 전투에서 패하여 죽었다.

그는 역시 아게실라우스 치하의 소아시아를 침범한 스파르타의 페르시아 이전 동맹과의 전투에 연루되었다. 스파르타의 그리스 사건으로 돌리기 위해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적들 특히 아테네인, 테베인, 고린도 인을 매수하였다. 이들 용병들은 코린도 전쟁으로 알려지게 된 스파르타 인들과 교전하게 되었다. 기원전 386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는 그의 동맹을 배반하였다. 그리고 스파르타와 협상하였다. 그리고 안탈키다스의 조약에서 그의 이전의 동맹이 조항으로 가게 압력을 가했다. 이 조약은 페르시아 방향의 아나톨리아 해안의 이오니아와 애놀리스의 그리스 시들의 지배를 회복하였다.

한편 그리스 본토를 스파르타에게 주었다. 비록 그리스에 의해 덜 성공적이였지만 아르타크세르 크세스는 이집트인들과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그의 치세 초기에 반란을 성공하였다. 기원전 373년에 이집트를 다시 정복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실패였지만 그의 쇠퇴하던 시절에도 페르시아인들은 페니키아를 정복하려는 이집트와 스파르타 연합군을 패배시켰다.

그는 여러 아내를 얻었다고 보고되는데 그중의 최고는 아스파시아라는 이름의 포카이아의 그리스 여자였다.(페리클레스의 정부와는 같지 않다.) 그는 역시 젊은 환관을 사랑하였는데 이름은 티리다테스로 소년기를 벗어나는 중 죽었다. 그의 죽음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매우 슬프게 하였다. 제국 내에 그에 대한 공적인 애도가 왕에게 그의 백성의 제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푸림 이야기의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스의 주요 후보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건설 프로젝트 Edit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부의 대부분은 건설 프로젝트에 쓰였다. 그는 수사의 다리우스 1세의 궁전과 요새을 복구하였다. 그리고 역시 영역의 남동 구석에 강력한 성채를 포함하였다.

그리고 엑바타나에 새로운 청중을 위한 건물 아파다나(Apadana)와 조각상들을 만들었다.

그는 페르세폴리스에는 별로 건설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 임
다리우스 2세
제9대 페르시아 왕
기원전 404년 - 기원전 355년
후 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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