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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의 영토

Transport of cedar Dur Sharrukin

고대 아시리아의 유적

고대 아시리아중동에서, 기원전에 존재한 강성하였던 나라이다. 히타이트를 물리쳐서 세운 나라라고 본다. 아시리아 제국은 티그리스강 중부유역의 아수르시(市)에서 일어난 셈족의 국가이다. 기원전 3000년대 후반부터 기웑 610년까지 존속하였다.

초기에 아시리아라는 말은 티그리스 강 상류 지역을 부르는 말이었으며, 고대 도시이자 수도였던 아수르(Assur)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유역을 바빌로니아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그 북쪽 지방을 아시리아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지방은 본래 후르리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아수르는 수메르인의 식민도시로 성립되었으며, 그 후 셈계의 아카드인의 도시가 되었다고 추측된다. 도시명 아수르가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기원전 2300년경 아카드 왕조시대이다. 기원전 2000년경은 우르 제3왕조 치하에 있었다. 아수르의 제후 잘리쿰은 고대 엘람 왕국의 수도인 수사(Susa)의 같은 이름의 제후 잘리쿰과 동일인물로 생각되며 그는 동방 및 북방변경의 방비와 통상로의 확보를 우르의 왕으로부터 위임받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나중에는 북부 메소포타미아 전체, 이집트, 아나톨리아까지를 지배하는 대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아시리아 본토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전체 (남부는 바빌로니아)에 해당하며 니네베를 수도로 하였다. 아시리아인의 고향은 티그리스 강에서 아르메니아에 이르는 산악지방이며 "아슈르의 산(Mountains of Ashur)"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시리아의 왕들은 세 차례에 걸쳐 역사상 의미있는 대제국을 형성하였는데, 각각 고대 아시리아 제국, 중기 아시리아 제국, 신아시리아 제국(제국 또는 기)으로 분류된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잘 알려져 있는 것이 기원전 911년~기원전 612년신아시리아 제국이다.

고아시리아(기원전 2000년대 전반) 편집

이 시기에 아수르는 독립한 유력 상업도시(국가)가 되었고, 아나톨리아의 카네슈에 상업식민지를 두고, 주로 구리·주석 교역이 활발하였다. BC 2000년대 초부터 서방 셈어족에 속하는 아모리인이 이동을 개시하여 바빌론 등 여러 도시에 왕조를 세웠다. 왕조는 아수르에도 성립되었다. 샴시 아다드 1세(재위 BC 1813∼BC 1781)는 첫째아들 이시메다간을 수도 가까이에 배치하고, 아나톨리아로 통하는 길의 방위와 함께 에슈눈나 왕국에 대항하게 하였다. 또한 정복한 말리 왕국에는 둘째 아들을 왕으로 보냈다. 이러한 배치는 아나톨리아와 엘람을 묶는 통상로의 확보와 그 권익의 옹호가 주목적이었다. 이 아시리아는 바빌론 제 1 왕조의 함무라비에게 굴복하여 독립국가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중아시리아(기원전 2000년대 후반) 편집

아시리아는 인도유럽어족의 대이동으로 기원전 1500년경에 성립된 미탄니에 예속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리아는 통상로의 중요 거점에 있어 국세가 신장되었으나, 이 지리적 조건은 여러 민족의 영향을 직접 받게 되는 약점이 되었다. 그 후 아시리아는 사방에 있는 적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타이트수필룰리우마스의 공격으로 미탄니가 약화되자, 아시리아의 아슈르 우발리트 1세(재위 기원전 1365∼기원전 1330)는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는 또한 딸을 바빌론왕에게 시집보내고 손자를 왕위에 앉힘으로써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아다드 니라리 1세(재위 기원전 1307∼기원전 1275)는 시리아까지 진출하였다. 적대 관계에 있던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이에 위협을 느끼고 아시리아에 대항하는 우호조약을 체결하였다. 아마르나 문서(文書)에서 아시리아왕은 <이집트왕의 형제>라고 불릴 정도로 열국과 어깨를 겨루는 강국이 되었다. 아슈르 우발리트 1세 치하의 아시리아는 바빌론을 압도하는 기세를 보였는데, 투굴티 니누르타 1세(재위 기원전 1244∼기원전 1208)는 바빌론을 공략해서 주신(主神) 마르두크의 상(像)을 빼앗아 오기도 하였다. 중아시리아는 상업국가에서 군사국가로 이행해 가는 현상을 보였다. 그 예로 말과 철을 이용한 군대의 재편성, 관료제의 정비, 아시리아법전의 편찬 등을 들 수 있다.

신(新)아시리아(기원전 1000년대 전반)편집

아시리아는 기원전 1200년경부터 시작된 <바다의 국민(필리스티아인;블레셋사람)>의 이동으로 인한 서아시아·동지중해 세계의 혼란과 함께 아라비아 사막에서 이동해 온 아람인과의 대립으로 인하여 약화되었다. 아람어는 국제어로서 아시리아에서도 사용되었다. 아슈르-단 2세(재위 기원전 934∼기원전 912년)가 부흥의 기틀을 구축하였고, 아슈르-나시르-아플리 2세(재위 기원전 884년∼기원전 859년)는 칼흐(니므루드)에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재위 기원전 745년∼ 기원전 727년)에 의해 제국시대의 막이 올랐다. 그는 군제개혁과 내정개혁으로 왕권 강화를 시도하였으며, 또한 <모든 적을 섬멸한다>는 그때까지의 방식에 강제 이주 정책을 추가해서 여러 민족의 반란의 근원을 없애려 하였다. 이 정책은 네부카드네자르의 <바빌론 포로>로 계승되었다. 아시리아는 사르곤 왕조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사르곤 2세(재위 기원전 721년∼기원전 705년)는 북방의 강국 우라르투를 격파해서 후환을 없앴고, 지중해 연안의 이스라엘왕 국을 멸망시켰다. 그는 새 도읍 두르샤르루킨(코르사바드)도 건설하였다. 에샤르하돈(재위 기원전 680년 ∼기원전 669)은 이집트에 침입해서 수도 멤피스를 점령하고 하(下)이집트를 제압함으로써 단기간이지만 오리엔트 세계의 통일을 실현시켰다. 아슈르바니팔(재위 기원전 668∼기원전 627면)은 재차 이집트에 침입해서 상(上)이집트의 테베까지 공략하였다. 또한 동방 엘람을 정복함으로써 최대판도를 실현하였으며, 도서관을 만든 일도 유명하다. 그러나 아슈르바니팔이 죽은 몇 년 뒤에 내분이 생겼으며, 구약성서에 <화(禍) 있을진저 피흘리는 도시>라고 되어 있듯이 기원전 612년 수도 니네베는 메디아왕 캭사레스와 바빌론왕 나보폴라사르에 의한 철저한 약탈과 파괴로 폐허가 되었다. 기원전 610년 아시리아제국은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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