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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kbar1.jpg

악바르(جلال الدين محمد اكبر Jalāl al-Dīn Muhammad Akbar, 1542년 11월 23일 - 1605년 10월 12일)는 무굴 제국을 통치한 제3대 황제(재위: 1556년 - 1605년)이다. 아라비아어로 [위대](偉大)하다는 의미를 지닌 악바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앙 아시아에서 들어온 외지인이었던 조부 바부르가 세운 무굴 제국을 진정한 제국이란 이름에 걸맞는 국가로써 발전시켜, 악바르 대제(Akbar the Great)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생애 Edit

무굴 제국의 제2대 황제 후마윤의 아들로써 아버지가 파슈툰인(Pashtūn;아프간인)장군 세르 샤 에게 북인도의 제위을 빼앗기고 유랑하던 시절에 서인도의 신드지방에서 태어났다. 이후 사파비 왕조의 지원을 얻어 1555년 인도를 재정복했던 후마윤이 즉위한 다음 해 사고로 죽자 13살의 어린나이의 악바르가 즉위했다. 즉위초기엔 세르 샤가 창건한 스르 왕조등의 무굴 제국에 적대하는 세력이 델리 주변에 남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으나, 부친이 남겼던 중신 바이람 한이 버텨주어 악바르는 같은해 11월 5일 델리근교에서 힌두교도의 군대을 격파하고, 후마윤이 재건한 왕조을 안정시키는데 성공했다.

악바르는 성인이 되자, 바이람 한 및 자신의 유모(乳母)일족을 타도하고 스스로 권력을 장악한뒤, 페르시아인등 출신이 관계없이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인재을 등용하여 권력과 군사력을 강화해 자신의 무굴 제국의 세력확대에 나섰다. 앙베르 왕의 딸과 결혼하여 앙베르 왕국과 동맹한것을 앙베르을 시작으로 라지푸트의 왕후을 차례로 연합하고 평정하여 휘하에 넣어 중앙아시아 전통의 부족제로 지탱하던 군대에 토착 힌두교도을 합쳐 새로운 군대을 만들었다. 이 강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30대 시절에 인도 북부의 대부분을 병합하는 대판도을 실현시켰다.

이런 광대한 판도에 다수의 비이슬람교도을 껴앉게된 제국을 지탱하기 위해 악바르는 무굴 제국의 제도확립에 나서서, 이슬람법상 이교도에 대해 부과하던 지즈야(인두세)을 폐지하는등 세제(稅制)을 개혁하고, 군인 및 관료에게 평상시 군비(軍備)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의무을 부여하여 병마(兵馬)의 숫자에 맞는 단계(만사브)을 내려 관료기구을 서열화하는 것과 더불어 안정된 군사력을 확보하는 만사브다리 제도을 도입했다. 1579년부터 이러한 일련의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대규모 반란으로 진행되자, 수년동안 이를 진압하여 무굴 제국의 지배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악바르는 건설사업을 활발하게 벌인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치세 초기에 완성한 건축물로는 델리에 있는 아버지 후마윤의 영묘가 대표적이다. 제국의 궁전은 델리와 함께 북인도의 중요도시였던 아그라에 세워졌으나, 악바르는 15세기에 로디 왕조에 의해 건설된 옛 성채을 1565년 빨간 모래바위에 세워진 아그라 성채을 재보수하여 이 성을 [악바르의 도시]라는 의미을 지닌 악바라바드의 이름을 부여했다. 또한 1569년에는 귀의한 치슈티교도의 신비주의자(스피)의 영향을 받아 아그라 근교에 주위 11km에 이르는 도시영역을 갖춘 새로운 수도 파티플 시크리(승리의 도시)의 건설을 시작해 1574년에 수도가 라호르로 옮겨지는 1584년까지 약 10년 동안 수도로써 사용하였다. 1598년까지 악바르의 수도였던 라호르의 성채도 악바르의 조영(造營)한 것을 기초로 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중앙아시아계-이란계의 무슬림(이슬람교도) 토착 무슬림 및 힌두교도가 많은 제국의 군주로써 악바르는 이슬람교의 포루투칼인이 인도에 선교하던 크리스트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교에 대해 관심을 꾸준히 기울였다. 특히 신비주의에서 강한 영향을 받아 여러 종교을 총합적으로 존중한 그 자신의 종교자세는 악바르의 측근 아브르하즈르가 악바르의 명령에 의해 집필한 연대기 [악바르나마]에 [디네 이라히](신의 종교)라는 이름으로 책으로 남겨져 매우 유명해졌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악바르는 아버지의 유랑생활 시절에 태어나 중앙아시아 출신의 무인들 사이에서 길러졌기 때문에 어린시절에 문학을 공부한 경험이 없어 무학이었으나, 사파비 왕조의 궁정에서 그림을 직접 그린적도 있을정도로 예술을 사랑하고 학문을 보호했다. 아브르하즈르 등을 비롯한 측근들은 뛰어난 문화인등이 모였고, 산스크리스트에서 페르시아어로의 해석사업도 진행하였다.

치세말기에는 데칸지방에 진출해 아흐마드나갈 왕조와 전투를 벌여 판도를 남쪽으로 크게 넓혔으나, 아들 셀림과는 사이가 나빠 악바르는 후계자문제에 대해선 실의에 빠진 말년을 보냈다. 1605년 악바르는 아그라에서 죽고, 셀림은 제4대 황제 자한기르로써 즉위했다. 악바르의 유해는 아그라 근교의 시칸드라에 운반되어 화장되고 이땅에 악바르묘가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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