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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leksander-d-store.jpg

알렉산드로스 대왕(그리스어: Αλέξανδρος 'ο Μέγας 또는 Μέγας Aλέξανδρος, 영어: Alexander the Great, Alexander the Macedonian, 기원전 356년 7월 말~기원전 323년 6월 10일)은 필리포스의 왕위를 계승한 후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들 가운데 하나인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운 마케도니아 왕국의(그리스어: 'ο Μακεδών 호 마케돈) 왕으로서 그의 업적을 기려 마케돈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 받들며, 때로는 계승 서열에 따라 알렉산드로스 3세(그리스어: Alexandros tritos 알렉산드로스 트리토스,영어: Alexander III)라 일컫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영어의 영향으로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이슬람식 이름으로 이스칸달이라고도 한다.

초기의 생애 Edit

필리포스 2세와 왕비 에피루스의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에 사나운 명마를 단숨에 길들였고, 점차 자라면서 필리포스 2세는 알렉산드로스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그리스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모셔왔다. 알렉산드로스는 뛰어난 무예에다가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탁월한 학문으로 더욱 발전해 갔으며,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디세이〉를 감명깊게 읽었다. 아버지가 전쟁으로 나라를 비울 때에는 섭정으로서 나라를 잠시 다스렸으며, 18세 때는 카로네아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싸워 승리하였다.

정복의 시기Edit

페르시아의 정복Edit

파일:BattleofIssus333BC-mosaic-detail1.jpg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죽음(알렉산드로스가 아버지를 암살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알렉산드로스는 평생동안 소문에 시달렸다. (물론 진위여부는 가려지지 않았다.)) 20살에 마케도니아의 왕에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가 계획했던 페르시아 정복임무를 물려받았다.

가우가멜라 전투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제국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격파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했다. 기원전 326년에는 북인도로 진출하였다. 이집트를 정복한(사실 정복이라기 보다는 무혈입성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의 태양신아몬의 아들을 자칭하여 자신이 호메로스의 저서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후손이며 태양의 아들이며 살아있는 신임을 주장했다. 기원전 334년부터 동방원정을 시작하여 10년만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인도 공략Edit

그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북인도 정복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겼다. 북인도를 정복하기 시작한 알렉산드로스는 병사들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연일 탈영이 이어졌고 반란이 일어났다. 북인도의 습한 기후는 병사들을 매우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는데,알렉산드로스의 지치지 않는 정복에서 오는 피곤과 스트레스 등이 힘들게 하고 병사들은 전염병 등으로 많은 병사가 사망했고 결국 알렉산더는 열병으로 죽었다.

인도 이후Edit

그는 제국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들을 세웠다. 도시들 중 이집트알렉산드리아가 가장 유명하다.

죽음 Edit

오랜 원정과 정복으로 그는 서서히 정신적 공황상태와 정서불안에 시달렸다. 날이 갈수록 그는 성격이 괴팍해졌고 쉽게 부하들을 처형하기까지 했다. 그는 바빌론의 관개시설 보수관련 일을 벌이며 잦은 연회를 열었는데 그로 인해 병에 걸려 기원전 323년 6월 13일 사망했다.

제국의 통치 Edit

파일:MacedonEmpire.jpg

알렉산드로스는 동서 융합책을 꾀했다. 우선 다수의 그리스인을 소아시아 지역 즉, 터키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그리스인과 피정복 지역의 주민들을 결혼시켰고 페르시아인 관리들을 등용했다. 그 자신도 페르시아의 군주이자 적이었던 다리우스 3세의 딸과 결혼했으며, 아시아 여성과 자신의 군인들간의 사실혼을 정식 결혼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동양서양의 융합은 실패했다. 이주한 그리스인들과 피정복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생겼고, 그리스인이 대부분의 주요 관직을 독점하였다. 따라서 피정복 지역의 주민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고,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공용어는 그리스어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동서융합정책은 동방과 서방문화가 융합되어 간다라 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냈으며 불교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제국의 분열 Edit

그의 사후 제국은 내전상태에 들어갔고 결국 제국은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 리시마코스 왕조로 분열되었는데 이 중 리시마코스 왕조는 셀레우코스 왕조에 곧 정복당했다.

헬레니즘 문화 Edit

파일:Crystal Clear app xmag.png 이 부분의 본문은 헬레니즘입니다.

개인적 사실 Edit

기원전 324년 그의 친구 헤파이스티온엑바타나에서 죽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매우 슬퍼했으며 엄청난 돈을 들여 바빌론에서 장례를 치르게 했다. 또한 헤파이스티온을 영웅으로 추앙하도록 지시했는데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은 서로 깊이 사랑하던 관계였다. 그는 양성애자였고 알코올 중독자였다.[출처 필요]

바깥 고리 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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