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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의 왕 오로데스 2세(또는 히로데스)는 기원전 57년에서 38년까지 파르티아 제국을 다스렸다. 그는 프라아테스 3세의 아들로 기원전 57년 그의 형제 미트리다테스의 도움으로 전 황제를 살해하였다.

이 미트리다테스는 메디아의 왕으로 임명되었으나, 곧 오로데스에 의해 추방되어 시리아로 달아났다. 그때부터 그는 파르티아 왕국을 공격하였다.그러나 기원전 55년 잠깐 집권한 후 티그리스 강변의 셀레우키아에서 오로데스의 장군 수레나에 의해 포위공격을 당하였고 연장된 저항 후에 체포되고 처형되었다.

그러는 동안 로마 장군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동방 정벌의 시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53년 그는 카르해의 전장에서 수레나에 의해 패사하였다. 한편 오로데스 2세 그 자신은 아르메니아를 침범하였고 티그라네스 대제의 아들인 왕 아르나바스데스를 억압하여 로마를 포기하도록 하였다. 카르해의 승리로 유프라테스 동쪽의 나라들은 파르티아로 보호되었다. 다음 해 그들은 시리아를 공격하였지만 수레나에게는 거의 성공이 없었는데 그의 성취가 그를 너무 위험하게 만들어 오로데스 2세에 의해 죽었고 왕의 어린 아들 파코루스는 기원전 51년 가시우스에 패하였다.

로마 공화국의 내전이 발생한 동안 파르티아는 먼저 폼페이에게 걸었고 그후 부루투스 그 다음은 카시우스였다. 그러나 기원전 40년까지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파코루스가 로마인 망명자 퀸투스 라비에누스의 도움으로 시리아와 소아시아의 큰 부분을 정복하였지만 기원전 38년 벤티디우스에 패하여 살회될 때, 오로데스는 그의 전투적인 아들의 죽음으로 매우 괴로워하며 그의 아들 프라아테스 4세를 계승자로 임명하였지만 곧 그에게 죽었다. 플루타크는 오로데스 2세가 그리스어를 매우 잘 이해하였다고 말한다. 크라수스가 죽은 후에 유리피데스의 주연이 그의 정원에서 배풀어졌다.

전 임
미트리다테스 3세
제16대 파르티아 왕
기원전 57년 - 기원전 38년
후 임
프라아테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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