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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 대군(1488(성종 19)~1544(중종 39)) 이역은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中宗)이였다. 이름은 역, 자는 낙천(樂天)이다. 성종의 둘째아들이고 어머니는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이다. 그는 성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494년(성종 25)에 진성대군(晉城大君)에 봉해졌다. 신씨와 진성대군(출날 중종)은 신씨 l3살, 진성대군 l2살의 어린1나이에 부부의 연으로 만났다. 열두 살 차이가 나는 진성대군은 생존마저 위협받을 정도로 어려움에 처했고, 급기야 연산군 6년 2월에는 사저로 출궁되었다. 연산군이 진성대군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종은 대군시절부터 민정호와 호형호제하며 지냈다. 갑자사화 후 연산군의 폭정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었다. 그 동안 자신의 행동에 제동을 걸던 세력이 모두 없어진 만큼 그가 못할 일은 없었다. 우선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는 모두 죽이거나 하였는데 연산군이 이미 광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박원종은 구수영, 이계, 이예를 진성대군의 집에 보내 호위하면서 반정을 일으킨 이유를 고했다. 진성대군의 사저는 장정과 심순경의 휘하 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펴고 있었다. 정현왕후의 아들 진성대군(중종)은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1506년에 음력 9월 2일 거사에 돌입한 반란군들은 먼저 진성대군에게 거사 사실을 통보하고, 신수근, 신수영 형제와 임사홍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연산군은 폭군이었으므로 박원종,유자광등이 반정을 일으켜 진성대군을 왕위에 세웠다. 오겸호는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19세의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세운다. 그뒤로 박원종은 연산군일기를 통하여 연산군의 횡포를 낱낱히 알렸고 그리고 연산군의 묘를 릉이라고 안하고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연산군지묘라고 비석을 새겨놓았다고 합니다.

진성대군으로 책봉되었다가 연산군의 폭정으로 성희안, 박원종 등의 추대로 임금이 된 중종은 새로운 정치를 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어진 정치를 베풀고 연산군의 폐정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중종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뒤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사림파를 기용하여 성리학을 장려하고 개혁정치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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