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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실라 ( ٹیکسلا, 산스크리트: तक्षशिला Takṣaśilā)는 파키스탄의 중요한 고고학적 위치로서 간다라 도시 탁샤실라(또는 탁실라)의 폐허를 포함한다. 기원전 6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 중요한 베다/힌두교불교의 학습 중심이였다. 1980년 탁실라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사적으로 탁실라는 세 중요한 교차로에 놓여 있었다. 파탈리푸트라에서의 왕도와 박트리아, 카피사 그리고 푸스칼라바티(페샤와르)를 통과하는 북서 통로 그리고 카슈미르와 중앙 아시아에서 스리나가르, 만세라 그리고 하리푸르 계곡을 지나 쿤제라브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로 가는 길이 그것이다.

탁실라는 이슬라마바드의 수도권에서 서쪽으로 35km떨어져 있으며 그랜드 트렁크 도로에서 가까운 푼잡의 라왈핀디의 북서쪽에 있다.

역사Edit

전설에 따르면 탁샤는 고대 인도의 왕으로 탁샤 칸다(타슈켄트)라 불리는 왕국에서 다스렸고 탁샤실라 도시를 창건하였다. 탁샤실라의 뜻은 산스크리트어로 "탁샤 왕에 속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탁샤는 바라타 (라마야나)와 만다비의 아들이였다.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쿠루 왕국의 상속자 파리크는 탁실라에서 등극하였다.

전통에 따르면 마하바라타는 탁샤실라에서 처음 시연되었다고 한다. 아흐마드 하산 다니와 사이푸르 라만 다르는 탁실라의 어원이 타카라는 종족에 있다고 추적한다. 다모다르 다르마난드 코삼비에 따르면 탁실라는 타카라와 관려된다. 그것은 목수를 의미하며 나가족의 다른이름이다.

  • 기원전 326년 알렉산더 대왕이 탁실라의와 암비의 조공을 받았다. 후에 젤룸 강에서 포루스에 항복하였다.
  • 기원전 317년 알렉산더의 장군 에우데무스와 사트랍 페이톤이 인더스에서 물러났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조언자 카우틸리야는 탁실라의 선생이였다.

  • 아쇼카시절에 탁실라는 불교학습중심이 되었다. 그럼에도 탁실라는 잠시 지역 반란의 중심이였다. 수년 후에 항복하였다.
  • 기원전 185년 마지막 마우리아 황제 브리하드라타는 군대 퍼레이드 중에 그의 장군 푸샤미트라 슝가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는 신수도를 탁실라의 강 반대편인 시르캅에 세웠다. 이 그레코-박트리아 지배 시에 여러 왕조가 그 도시를 수도로 하여 지배하였다. 도시는 여러 교역 길드에 의해 독립적으로 조정되고 스스로 이득을 얻었다. 도시는 또 도시의 주화를 주조하였다.

  • 서기 76년 탁실라에 발견된 신의 아들, 왕중왕, 위대한 왕 쿠샤나의 비문의 연대이다.
  • 서기 460-470 에프탈라이트가 간다라펀자브를 휩쓸었다. 탁실라의 불교 유적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다시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들 침입한 왕들의 몰락으로 탁실라는 많은 왕조의 다양한 수도가 되어 왔다. 그리고 불교와 고전 힌두교인들이 사는 베다불교 학습의 중심이였다.

오늘날의 탁실라Edit

현재 탁실라는 라왈핀디 구역에 속하며 그것은 펀자브의 포토하르 고원의 주변에 퍼져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외곽에 위치하여 마르갈라 언덕의 타르놀을 통하여 통신하다. 도시 주거 영역은 깨끗하고 산뜻하며 중공업, 교육기관 그리고 병원 근로자가 산다. 탁실라 중공업도 그곳에 있다. 탁실라에는 엔지니어링 기술대학(UET)를 포함한 많은 교육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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